한국을 방문한 후의 홈씩
강 철 구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메이지대학 대학원 조수)
2003년 3월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은 12년이 넘는다.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변화를 주기위한 선택이 외국유학이었고, 지난 12년동안 강산이 변한만큼, 나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수없이 많았다. 우선은 나의 목표인 박사학위와 결혼, 그리고 두 아이들, 이 외에 다사다난한 것 까지 합치면, 족히 강산이 몇 번은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말이 12년이지, 그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을 오고가고 할 때면, 나는 싼 비행기티켓을 끊기 위해 1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한국방문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데다 한글을 전혀 모르니, 아이들의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방학기간동안만이라도 한국에 보내서 한글을 깨치우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런 생각으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두 아이에게 절대로 일본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도착한 한국이었다. 오자마자 학원에 등록하고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한달만에 한글을 깨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런다.
어쩌랴 싶어,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복습과 예습을 가르키느라 내 시간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들과 접는책상을 사이에 두고 머리씨름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큰 딸 아이는 한글을 깨우쳤다. 엄청난 소득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가까워 오는데도 아이들이 전혀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이 좋다. 일본은 바보(ばか）” 라며, 한국에 있게 해 달라고 졸라댄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놀 수 있는 동네 친구들이 생겼고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절대 동네친구들이 없다.
친구네 집에 방문할 때는 사전에 전화로 이야기 해 놓아야 하고, 부모가 데리러 오거나 데려다 준다. 그리고는 아주 조그만 선물을 건네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건네야 한다-전부가 그렇다는 것보다는 일반적으로 그렇다), 더군다나 한국말 잘 못한다고 신기해 하면서 주위에 꼬마들이 몰려서 한국말 시키고 하니까 조그만 영웅심이 생겼나보다.
거기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가쪽, 친가쪽 친척들까지 보기만 하면 귀엽다고 일만원짜리 지폐를 주니까 이제 돈벌이까지(?) 짭짤하다싶은가, 일본에 가기 싫다는거다.
한술 더 떠 있는 것은 나다. 지금껏 일본에 유학한 기간을 통틀어 한달이라는 긴 기간을 한국에 머물렀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아이들 한글 깨치우느라 동반한 한국행을 통해 이대로 이곳 고향 천안에서 정착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여기에도 나 나름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일본과 비교되어 불편한 것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났다. 인도도 그렇고 차도도 그렇고 왜 그렇게 울퉁불퉁하고 땜질한 곳이 많은지, 음식점 밖에서는 음식이 어떤 모양으로 나오고, 가격이 얼마인지 전혀 알 수도 없고, 택시기사들은 왜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음악을 틀어대고 따라서 노래를 하는지 짜증만 났다.
길거리에 늘어선 포장마차는, 예전에 느꼈던 맛있다는 생각보다는 청결하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럴때마다 일본은 안 그런데 왜 한국은 이럴까 하며, 마치 내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불평을 하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잠시, 역시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며칠이 지나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아도 재미있고, 열쇠를 갖고 가지 않으면 그나마 들어가서 용변도 볼 수 없는 음식점에 가도, 게다가 용달차에 수박을 싵고 뽕짝 음악을 틀으며 자기네 수박이 제일 싸다고 확성기로 떠들어 대는 아저씨를 봐도, 모두가 내가 사랑하고 내가 자란 고향냄새가 가득 넘치는 내 조국이었다.
처음 일본에 가본 사람들은 일본이 청결하다고 좋아하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고 한다. 조금 살다보면, 일본인들의 차거움에 일본을 욕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나처럼 강산이 변하도록 살게 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엇이 편하고 무엇이 불편한지 모르고 익숙해 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1주일, 아니 단 며칠만 지나도 금방 적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번주 (8월 21일) 에 일본으로 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한국의 높은 하늘을 금방 알 수 있듯이, 나리타공항에 도착했을때는 이곳도 나의 제 2의 고향이구나 하곤 또 다른 느낌의 안도감이 있었다.
|
|
|
date : 2003-08-26 | view : 35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