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초사하는 만큼 된다 ?
이용관/한국정책평가연구원 전문연구위원/부천문화재단 예술경영 전문위원
공연기획자의 직업병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 ‘노심초사’를 꼽는다. 병인은 늘 ‘불특정 다수’이다. 좋은 무대와 예술가는 여건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만 불특정 다수인 관객을 모으려면 걱정이 늘 끊이지 않는다.
공연기획자로서 15년 동안 이 직업병의 극치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였다. 96년 무덥던 여름, 서울시향과 곽승(지휘), 홍혜경, 신영옥, 김동규, 최승원, 클라라 강 등의 협연으로 꾸미는 애틀랜타 심포니홀 공연을 현지에서 준비할 때였다.
이 공연은 국내 TV에 중계하기로 되어있었고,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들은 물론 북한 선수단도 초청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니 객석을 모양 갖춰 채우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역시 불특정 다수였다. 이 공연은 무료로 애틀랜타의 교민과 미국인들을 비슷한 비율로 초청하여 서로 우의를 다지게 하자는 뜻도 있었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티켓을 파는 것보다 무료로 초청하는 작업이 얼마나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지 해본 사람은 안다. 좌석배치도를 걸어 놓고 초청자들을 일일이 전화로 체크하여 좌석마다 스티커를 붙였다 뗐다 하는 작업이 지리하게 반복되었다.
미국인들은 관심이 적고, 교민들은 ‘나도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스티커가 붙지 않은 수많은 빈 좌석은 피를 말리는 것이었고, 교민들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는 일은 말 그대로 죽음이었다. 이런 노심초사의 댓가로 40%쯤은 미국인들로 채울 수 있었고,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끝곡 ‘코리아 환타지’ 마지막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엉엉‘ 소리 내어 울던 교민 자원봉사 아가씨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 우리는 술잔을 수없이 부딪히며 애틀랜타의 마지막 밤을 흥겨이 보냈다.
평생 지고 갈 이 직업병을 줄이는 묘안은 없을까? 이젠 어느 정도 터득하긴 했지만 역시 근본 치료가 가능한 백신은 없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얻은 진리는 만사가 노심초사 하는 만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 직업병을 즐겨야 할까?
(월간 오버추어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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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08-26 | view : 3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