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일보 전문가기고, 2003년 8월13일자 5면
지역축제의 성공조건
박 경 귀(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지난 칠월 중순에 열 명의 연구위원들과 함께 일본의 천년 고도인 교토에서 벌어진 ‘기온 마쯔리’를 참관하고 왔다. 이 마쯔리(축제)는 유서 깊은 전통, 규모의 웅대함과 화려함 등 모든 면에서 일본 마쯔리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869년에 수도인 교토를 휩쓴 전염병의 퇴치를 기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니 축제의 연륜이 천 백년이 훨씬 넘는다.
칠월 한달 내내 계속되는 이 축제는 높은 누대 위에 산모양을 만들고 창이나 칼을 꽂은 화려한 장식의 수레인 서른 두개의 야마보코의 시가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각 마을(町)마다의 수호신을 모시고 각양 각색으로 치장한 야마보코는 높은 누대에서 쉼 없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수레를 끌고 따르는 인원이 많게는 백여명에 이르는 웅장한 것에서부터 작게는 이 삼십여명이 단출하게 메고 가는 마치 우리의 꽃상여를 연상시키는 것까지 다양하다.
16일 전야제엔 마을마다의 신사와 야마보코에서 각종 의식이 진행된다. 시내 중심 골목마다 노점이 빼곡이 들어서고 차 없는 거리가 된 도심은 전통 야회복인 유카타를 입고 한껏 부푼 선남선녀,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이 흥겨움과 즐거움에 어우러져 축제분위기를 만끽하게 된다.
17일엔 움직이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야마보코 순행 행렬을 보려는 인파로 거리는 몇 시간 전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교차로에서 수십톤이 넘는 육중한 수레를 바퀴 밑에 대나무를 깔고 물을 뿌린 후 소리꾼의 지휘에 따라 수십명이 요령 소리와 함께 일순간에 줄을 당겨 회전시키는 장면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기온 마쯔리는 제의적 축제의 성격상 모든 과정이 차분한 가운데 이루어져서 갖가지 볼거리를 늘어놓는 요란스런 이벤트형 축제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다소 낯설기조차 하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난장과 같은 놀이를 통한 흐트러짐의 일탈이나, 반대로 전통적 풍습 속에서의 엄격한 의례와 격식을 접함으로써 느끼는 초현실감 역시 모두 탈현실성을 충족시켜주는 축제의 속성에서는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 축제가 일본인에게 주는 매력은 생활 속에 뿌리박힌 신앙적 요소와 집단주의적 문화를 교토의 각 마을의 독특한 야마보코의 제작과 순행을 통해 축약적으로 표현해 주는데 있는 것 같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엔 일본 전통문화의 한 단층을 압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 축제가 일본의 대표 축제로 자리잡게 된 요인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지역축제를 성공시키기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지역 토착성이 있는 테마를 발굴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둘 때 비로서 지역축제가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는 생명성을 지니게 된다.
둘째,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기온 마쯔리는 지역상공인이 중심이 되어 철저하게 주민주도형으로 치러지고 있다. 우리의 동 단위와 비슷한 정(町)별로 모든 준비와 집행이 이루어진다.
신사에서 봉사하던 어떤 주민은 매년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참여하고 있었는데 아주 중요하고 자랑스런 소임으로 당연시하는 모습이 감명적이었다.
셋째, 세대와 계층을 잇는 연속성이 기획되어야 한다. 전야제에서 야마보코 관람을 할 때 입구에서 표를 받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와 옆에서 입장객이 벗어 놓는 신발을 하나 하나 정리하던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들어 보이던 노인의 대비된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된다.
전통 악기의 연주, 수레의 견인 및 수행 대열에 이르기까지 축제의 모든 과정에 어린이로부터 청장년, 노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러한 어우러짐과 자연스런 학습을 통해 세대간 계층간 단절을 이어주고 사회적 박탈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하도록 섬세한 축제 기획이 필요하다.
넷째, 축제 컨셉의 초점화이다. 전통문화 축제이든 현대적 이벤트형 축제이든 축제의 핵심 개념, 즉 컨셉을 초점화해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핵심 테마를 집중적이고 다면적으로 조명해야 축제의 이미지와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된다.
우선 관람객 동원에 연연하여 축제의 주제와 거리가 있는 백화점식 연예공연기획으로 채워질 경우 축제의 색깔은 실종되고 만다.
다섯째, 축제는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 기온 마쯔리는 천년의 역사와 주민의 정성이 빚어내었다. 처음부터 세계축제를 표방하는 축제는 전시효과에 그치는 일회성 행사로 전락하기 쉽다.
축제는 긴 숙성과 기다림 속에서 성숙하고 비로서 세계성을 만들어낸다. 충분한 시간을 둔 전문가의 치밀한 기획과 광범위한 지역사회의 공감을 토대로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축제 형성 및 집행 전략이 요구된다. 욕심내지 말고 소박하게 시작하되 착실하게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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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08-13 | view : 3797
